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온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과연 아틀란티스 도시는 실존했던 곳일까요? 함께 그 신비의 베일을 벗겨보시죠!
아틀란티스 도시의 시작, 플라톤의 대화편
아틀란티스 도시 전설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347년)의 두 대화편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플라톤은 이 작품들에서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피력하기 위해 아틀란티스라는 가공의 섬나라를 등장시켰는데요, 이는 훗날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등장인물 크리티아스의 입을 빌려 아틀란티스 도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9,000년 전 그리스의 이상 국가였던 고대 아테네와 대적할 만한 강대국이었죠. 아틀란티스는 헤라클레스 기둥(오늘날의 지브롤터 해협) 너머 대서양에 위치한 거대한 섬으로, 그 크기가 아시아와 리비아(아프리카)를 합친 것보다 컸다고 합니다.
이 섬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다스리는 곳이었는데, 포세이돈과 인간 여성 클레이토 사이에서 태어난 열 쌍둥이 왕자들이 섬을 통치했다고 하네요. 포세이돈은 섬을 동심원 모양으로 구획을 나누어 아들들에게 분배했고, 그중 첫째인 아틀라스가 섬 한가운데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 섬 전체가 아틀란티스라 불리게 된 거죠.
플라톤은 아틀란티스 도시를 풍요롭고 번영한 곳으로 묘사합니다. 섬에는 온갖 종류의 광물과 식물, 동물이 풍부했고, 인구 또한 수십만 명에 달했다고 해요. 특히 아틀란티스 도시의 중심부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과 신전이 즐비했는데, 건축물에는 금, 은 등 값진 금속과 오리칼쿰(오리할쿰)이라는 신비한 물질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인들은 점차 부와 권력에 물들어갑니다. 절제와 지혜로움을 잃어버린 그들은 이웃 국가를 침략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그리스에까지 전쟁을 일으키게 되죠. ‘크리티아스’편에 보면 당시 그리스의 이상국가였던 아테네가 이를 막아섰고, 결국 아틀란티스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전쟁 후 벌어진 일은 더욱 비극적이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지진과 홍수로 인해 단 하루아침에 아틀란티스 도시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죠. 이때 고대 아테네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어 문명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플라톤 스스로도 이 이야기가 역사적 실화가 아닌 일종의 우화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티마이오스’ 도입부에서 그는 아틀란티스 이야기에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음을 시사하는데요, 이는 곧 플라톤이 아틀란티스 도시를 창작된 이야기로 말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왜 아틀란티스라는 가상의 나라를 창조했을까요? 이는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통해 이상 국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것은 바로 지혜와 정의, 절제가 구현된 국가였습니다.
반면 아틀란티스의 멸망은 교만과 물욕이 초래하는 결과를 경고하는 것이었죠.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널리 퍼져있던 ‘휘브리스(Hybris, 교만)’에 대한 경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도한 욕심은 곧 자멸을 부른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아틀란티스 이야기에 담았던 것이죠.
또한 아틀란티스 도시를 9,000년 전 존재했던 사회로 묘사한 것도 플라톤의 의도적 장치로 읽힙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익숙했던 ‘황금시대’ 신화를 차용함으로써 이야기에 역사적 진실성을 부여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플라톤에게 아틀란티스는 철학적 담론의 도구이자 문학적 장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창조한 이야기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통찰은 훨씬 깊은 진실을 담고 있었던 거죠. 플라톤은 우화적 방식으로 인간 영혼의 이상과 나락을 탐구한 선구자였다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틀란티스 전설의 확산
플라톤의 대화편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처음 등장한 아틀란티스 도시 이야기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역사적 실체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아틀란티스는 신화와 현실,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재해석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라틴어로 번역된 플라톤의 대화편이 널리 읽히면서 아틀란티스 도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로마의 작가 히긴누스는 자신의 저서 ‘우화집(Fabulae)’에서 플라톤의 이야기를 차용해 아틀란티스를 다루기도 했죠.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 왕과 아틀란티스를 연결 지으며 전설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서기 410년경 로마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프로클루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틀란티스가 실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플라톤의 이야기가 이집트 사제들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며, 그 기록이 아직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프로클루스의 이런 견해는 이후 아틀란티스 전설의 역사적 진위를 둘러싼 담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아틀란티스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교부 철학자들은 아틀란티스를 노아의 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문명으로 보기도 했고, 에덴동산에 빗대기도 했죠. 12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두스 실베스트리스는 아틀란티스를 신의 섭리가 펼쳐지는 이상향으로 묘사했습니다. 신학적 해석 속에서 아틀란티스는 점차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의 차원으로 향해갔던 거죠.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아틀란티스 도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15세기 말 플라톤의 대화편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된 것이죠. 여기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맞물리면서 아틀란티스를 현실 세계와 연결짓는 시도들이 잇따랐습니다.
1530-40년대 스페인 역사가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고마라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틀란티스의 잔재일 것이라는 획기적 주장을 제기했죠. 그의 견해는 당시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잉카, 아스테카, 마야 등 고대 문명의 존재로 힘을 얻었습니다. 이는 향후 아틀란티스 담론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6-17세기에는 아틀란티스 도시를 지도 위에 그려 넣으려는 의욕적인 시도들도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회 학자 아타나시우스 키르허가 1665년 발간한 책 ‘지하세계(Mundus Subterraneus)’에 실린 아틀란티스 지도입니다. 그는 대서양 한복판에 거대한 섬으로 아틀란티스를 배치하고, 섬의 주요 도시와 지형까지 상세히 묘사했죠. 물론 역사적 고증은 부족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도였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아틀란티스는 이성의 잣대로 재단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아틀란티스를 “터무니없는 꾸며낸 이야기”라 일축했고, 역사가 바르텔레미는 전설을 역사적으로 검증하려 시도했죠. 이는 근대 사학의 맹아라 할 만한 작업이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틀란티스 전설에 접근했습니다. 시인들은 아틀란티스를 인간 영혼의 고향으로, 현실에서 상실된 이상향의 표상으로 그려냈습니다. 독일 시인 하이네의 ‘북해’ 연작은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죠. 그에게 아틀란티스는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투영하는 시적 공간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19세기에는 과학과 고고학의 발전에 힘입어 아틀란티스 도시의 실재성을 증명하려는 각종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882년 미국 의회 도서관장 이그나티우스 도넬리는 책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대륙이 실존했다고 주장했죠. 그 근거로 이집트 피라미드, 마야 유적 등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아틀란티스를 둘러싼 학문적 담론은 19세기 들어 크게 활기를 띠게 됩니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아틀란티스 도시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한층 본격화된 것이죠. 그러나 정작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은 학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세기 들어 아틀란티스 열풍은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영국의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미완성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아틀란티스를 과학 문명의 이상향으로 그려내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1930-40년대에는 아틀란티스를 현실 속에서 찾으려는 대중적 관심도 절정에 달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심령술사 에드거 케이시의 활약입니다. 그는 환상을 통해 자신이 과거 아틀란티스의 제사장이었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데요, 그의 아틀란티스 강의는 열광적 신도들을 양산하며 일종의 사이비 종교처럼 번져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고고학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 도시의 실체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60-70년대 플라톤 연구가 심화되면서 그의 대화편이 우화나 우언의 성격을 띤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게 되었죠. 다수의 과학자들은 플라톤 이전 어떤 문헌에서도 아틀란티스를 언급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설의 실재성에 의문을 표했습니다.
근래에도 아틀란티스 전설은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소설, 영화, 게임, 만화 등 수많은 장르에서 아틀란티스는 매력적인 소재로 활용되는데요, 인류 문명의 기원, 인간과 자연의 관계,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 등 보편적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플라톤이 처음 꺼낸 신화의 불씨는 수천 년을 지나오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담론의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문학, 역사, 신학, 과학 등 인문 지식의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죠. 비록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인류 정신사에 끼친 영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어 보입니다.
아틀란티스는 결국 인간이 품어온 이상향에 대한 꿈과 동경의 반영이 아닐까요? 그 꿈은 때로 신화가 되고, 때로 철학이 되고, 때로 문학이 되어 우리를 울리고 웃깁니다. 현실에서 결코 충족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강력한 상상의 자장을 형성하는 거죠. 우리가 아틀란티스 전설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불가능을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 열망, 그 끝없는 탐색이 아틀란티스라는 신화를 낳고 지탱해온 게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 모두 마음속에 작은 아틀란티스를 지니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한한 상상력, 어쩌면 그것이 신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이자 인간 정신의 고귀한 증거일지도 모르겠네요.
아틀란티스 이야기의 종착점은 어디일까요? 플라톤이 꿈꾸었던 이상 국가의 완성일까요, 인간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일까요? 그 답을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아틀란티스를 향한 모험만큼은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신화를 창조하고 신화를 좇는 한, 그 여정은 계속될 테니까요.
플라톤의 펜 끝에서 시작된 창조의 마법, 그것이 아틀란티스 신화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요? 우리 안의 이상향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초적 동력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당신 마음속 잃어버린 세계를 향해 항해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네요. 플라톤의 지혜를 나침반 삼아, 아틀란티스로 통하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틀란티스, 영원한 상상의 공간
그렇다면 왜 아직도 많은 이들이 아틀란티스 도시에 열광할까요? 아마도 인간이 지닌 이상향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입니다. 완벽한 문명, 모든 것이 풍요롭고 조화로운 세상. 비록 실존하지 않을지라도 그런 이상 세계를 갈망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감정이니까요.
또한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도 한 배경이 됩니다. 바다 속 깊은 곳,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 잃어버린 문명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상상. 그것은 곧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틀란티스는 역사적 실체가 아닌, 하나의 신화로 읽히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아요. 존재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인간 상상력의 원천으로 말이죠. 소설, 영화, 게임 등 수많은 창작물의 모티브가 된 아틀란티스. 앞으로도 아틀란티스는 우리에게 이상과 모험에 대한 영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마치며
우리가 아틀란티스를 좇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아닐까요? 번잡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신비로운 고대 문명의 전설은 일종의 탈출구이자 위안이 되어주니까요. 실재하든 그렇지 않든 아틀란티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 가치는 분명 존재합니다.
아틀란티스 도시의 신비를 좇는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태곳적 이상향을 꿈꾸며, 우리 안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함께 찾아볼까요?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 국가의 청사진을 깊이 음미하고, 인류 보편의 염원을 되새겨보는 시간. 아틀란티스 탐험은 곧 우리 자신을 탐험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세요. 아틀란티스로 통하는 길이 열릴 테니까요.